“역사를 음각(Engraving)한 공원, 도심 속 반전의 공간”
다양한 수목이 우거져있는 도심 속 녹지공간.
'서소문 역사공원'은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다. 순교의 역사에 대한 아픔을 음각으로 새겨넣어 건물이 드러나있지 않을 뿐.
'음각으로 새겨넣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어쩌면 이 것이 건물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일 수 있겠다. '음각'이란 조각도로 홈을 파 넣듯 요판을 만드는 판화기법이다. 그런 의미를 되세기며 단면도를 바라보면 건축가는 마치 조각도로 주요공간을 하나하나 파 낸 듯 하다. 순교자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고뇌를 말이다.
이러한 공간을 엮어 하나의 긴 시퀀스(동선)를 연출한 점이 돋보인다. 마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순례 길(Pilgrimage)'을 보는 듯 하다. 시간의 흐름과 체험을 통해 공간에 의문을 갖고 의미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달까.
침묵의 광장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외장 마감재료는 붉은 조적 계획되었다. 아마도 역사적 추모공간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희생과 그들이 흘렸던 피, 상처가 단순하면서 은유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재료와 함께 눈여겨 볼 것은 건축가가 빛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이다. 밝음과 어두움을 지속적으로 대비시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데, 마치 빈 공간을 빛과 어둠(그림자)으로 번갈아 채워내는 것 같다.
빛과 어둠이 대비되고 교차하는 경험은 종교적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 하더라도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한다. 아마 이러한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건축가는 자칫 장애물일 수 있는 기둥의 사용을 최소화하였다. 이를 통해 공간을 선형적으로 읽히게 하며 빛의 대비를 극대화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동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늘길. 새싹이 빛을 받아 싹을 틔움을 상징하고 있다. 하늘길은 음각의 지하동선을 자연스럽게 지상으로 연결하는데, 어둠의 공간이 최종적으로 빛의 공간으로 전위하는 느낌이다. 마치 지하의 새싹이 서서히 빛으로 싹을 틔우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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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부터 침묵광장, 하늘길까지 계획된 시퀀스를 모두 경험하면, 마치 한편의 영화를 관람한 것같은 느낌을 받게된다. 건축물을 정물로 다루지 않고 관객의 동적 움직임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려는 시도는, 건축가가 얼마나 이 프로젝트를 치밀하게 기획하고 고민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종교의 유무와 상관없이 꼭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하는 건축물이다.
* 윤승현 (인터커드) + 보이드건축 + 레스건축
프로젝트를 주도한 윤승현은 연세대학교 졸업 후 미국의 펜실베니아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국내에 들어와 인터커드 건축사사무소를 설립 후 당시(2014년) 건축계 최대 이슈였던 서소문 역사유적지 설계경기에 참여하여 공모작 약 300여점을 제치고 당선되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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