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거장인 리차드로저스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유작)이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나 봤던 그의 작품 '뽕삐두센터(Pompidou Centre)'를 보며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뒤늦게 지어진 그의 작품 앞에 다시서니 그때의 기억이 온몸에 한올한올 살아나는 것 같다.
'노먼포스터'와 더불어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로 불리는 '리차드 로저스'.
'서울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구나...'
여의도 한복판에 한동안 횡-한 공사판으로 방치되었던 'Parc1'은 개발과정에 수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외관 에 대한 호불호도 강해 호평과 비평을 넘나드는 말이 많은 건축물이다.
물론 필자도 여러 이야기를 하고싶어 입이 간질간질하지만, 오늘은 주제가 쇼핑몰 탐방인만큼 저층에 별동으로 위치한 '더 현대'에 집중에서 방문한 소감을 기술해보려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근 몇년간 지어진 그 어떤 상업시설 보다 과감하고 감동적인 건축물이다.
우선, 가장 눈길을 끌며 입이 턱 벌어졌던 것은 5층에 위치한 실내정원(사운드 포레스트)에 다다랐을 때였다. 분명히 실내지만 실외보다 더한 쾌적함이 느껴졌다. 무엇이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걸까. 높은 층고에 햇빛이 드리우며 곳곳에 나무가 자리잡고 있어서일까?
아마 다른 판매시설에서 흉내도 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무주공간에 있을 것이다. 실내이지만 야외의 느낌.
대규모 무주공간
이 건물 외관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건물위로 솟아오른 붉은 색 크레인을 볼 수 있다. 이 크레인이 지붕을 붙들고 있기때문에 내부에는 지붕을 지탱하기 위한 기둥이 설 필요가 없다.
과연 '하이테크 건축'가다운 발상이다.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것이 건물이 중력을 이기며 서있는 방법과 모습을 디자인으로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건축가(리차드 로저스)의 성향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것이다.
자연이 깃든 실내정원
심지어 구조 트러스 사이로 제한적으로 유입되는 빛은 높은 층고의 벽면에 맺히며 실내공간의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자연이 그림을 그리는 듯 하다.
자칫 허전해 보일 수 있는 대공간을 허하지 않게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빛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빛은 충분히 유입되지만 직사광이 불쾌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지붕 구조체(트러스)가 루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축에 외부의 풍경을 끌어오는 '차경'이라는 개념이 있듯이, 외부 환경을 실내와 연동시키면 분명 공간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갖게된다.
리차드 로저스는 처음부터 이런 공간을 상상했던 것일까...
사실 필자가 정말 놀란 것은 건축계획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공간을 설치하자고 한 발주자의 의사결정이다. 이러한 공간을 제안받았더라도, 이렇게 넓고 쾌적한 공간을 매장이 아닌 공용공간으로 할애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의 면적이라면 10평 정도의 매장이 120여개는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고, 한 매장당 연간 10억원 정도의 매출을 거둔다고 가정하면 연간 1,200억원의 매출을 잃는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백화점의 의사결정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최소한 이 공간의 가치가 연간 1,200억원 이상이라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백화점 시장은 온라인과 전쟁 중이다. 가격으로는 온라인을 이기기 어려우니, 오프라인을 방문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동안 쉽게 찾았던 경쟁력은 '명품'이었다. 분명 명품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그 다음 경쟁력은 '공간이 주는 재미와 경험'이다. 하지만 건축과 공간에 대한 투자는 명품처럼 즉각적이고 가시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이에대한 투자가 어려울 수 밖에없다. 그래서 현대백화점에 더욱 박수를 쳐주고싶다.
단언컨데, 일반적인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오픈할 때 주목을 받다 슬슬 그 인기가 시들기 마련이지만, '더 현대'는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기억하고 다시 찾을것이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옥상정원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한다. 그동안의 백화점과 쇼핑몰은 옥상정원을 주요 집객시설로 계획해왔다. 그도 그러한 것이, 운영자 뿐만 아니라 많은 건축가들이 옥상정원에 대한 막연한 낭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백화점의 옥상정원은 잘 활용되지 못한다. 생각한 것 만큼 유쾌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덥다. 봄과 가을에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성이다. 실제 옥상정원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날이 몇일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더 현대'가 재해석한 옥상정원, '사운드 포레스트'는 정말 그럴듯한 접근이고, 훌륭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대형 보이드와 폭포 오브제
대형 보이드에 위치한 오브제, 인공폭포.
건축이라기 보다 '인테리어'와 '상환경' 설계를 진행하면서 실현한 아이디어로 보인다. 자칫 허전할 수 있는 보이드에 훌륭한 오브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실내정원 '사운드 포레스트'의 장소성을 아래 층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물의 하중이 상당했을 텐데, 오브제를 받치고 있는 구조를 너무 센스있게 잘 풀었다. 물소리는 청각을 자극한다. '더 현대'가 구현하고자 하는 자연 컨셉의 상환경 컨셉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느낌이다.
무엇보다 보이드 하단을 이벤트 매장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기에, 폭포를 표현한 오브제 자체가 시각적으로 돋보이며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 동안 공간의 가치보다, 매장의 효율에 집중하던 운영형태를 탈피한 모습이 새삼 새롭다. 다른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떠올려보라. 애써 보이드를 만들어놓고 한평이라도 매장으로 활용하지 못해 안달났던 모습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쇼핑몰 중 가장 코디네이션이 안된 보이드는 잠실 '롯데몰 에비뉴엘' 이다. 방문할때마다 콧웃음치게 만드는 디자인이랄까. 애써 개방감있는 보이드와 누드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고 그 가운데 곡면계단 두개를 설치했다.
당연히 보이드의 개방감은 사라졌고, 자연채광도 차단하고 있다. 심지어 곡면계단 하부에 상설매장을 설치해 아무도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굳이 보이드를 계획한 이유를 모를만큼 이상한 공간이다.
심지어 이 곳의 곡면 계단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왜 그 계단을 이용할꺼라 생각했을까. 억지로 곡면계단을 달아맨 세련되지 못한 구조계획과 매장 인테리어와 따로놀고 있는 황금색 마감은 다른의미로 화룡점정이다.
굳이 '롯데몰 에비뉴엘' 보이드 이야기를 길게 서술한건 '더 현대'의 보이드와 비교하기 위함이다. 어떤 방식으로 계획한 공간이 고객에게 더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지 직접 경험해보길 바란다.
순환형 몰링동선
백화점에 순환형 몰링동선을 적용한 것은 국내에 처음 시도된 계획이다. 필자가 기억하기론 그렇다. 사실 가이드맵을 보면 이건 백화점 평면이라기 보다 쇼핑몰의 레이스트랙 평면에 가깝다. 마치 신세계의 '스타필드'처럼 말이다. 이건 백화점의 패러다임이 '상품 효율배치'에서 '공간 쾌적배치'로 전환한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의견은 이론적으로 수없이 제시되고 논의되어왔다. 다만 눈앞에 펼쳐진 '평당효율'과 '평당매출'의 유혹을 등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기에 '더 현대'의 시도가 새롭게 다가온다. 쇼핑몰과 백화점의 경계가 허물어진 느낌이랄까.
또 하나, 작은 요소지만 몰링계획에 인상적인 디테일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더현대'의 몰링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걷다보면 눈 높이에 위치한 매장 사인이 하나씩 하나씩 나타난다.
곡면 몰링을 통해 미묘하게 시야의 각을 틀면서 위치에 따라 시야를 변화시키고 있다. 덕분에 긴 동선이 쉽지만 단조롭지 않고, 심리적인 거리도 짧게 느껴지게 한다. 세심하게 고려된 상환경 계획이다.
.
.
.
끝으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DA계획.
학창시절 방문했던 '뽕삐두센터' DA와 똑같은 디테일. 이게 뭐라고 다시한번 추억이 돋는거니. 하나하나의 디테일부터 색상까지 '나는 로저스 작품이에요'를 말하는 것 같다.
[쇼핑몰 탐방2] 도심 속 힐링공간 '스타필드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