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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보다 더 권세를 누렸던 곳, 운현궁

by scape '-' 202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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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

조선시대, 궁궐보다 더 권세를 누렸던 곳, 운현궁

안국역 4번출구와 맞닿고 있는 운현궁(雲峴宮)은 조선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저택이자, '고종'이 즉위하기 전 12살까지 살았던 잠저이기도 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고종'이 즉위한 후 흥선대원군이 이 곳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였고 경복궁과도 직통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규모로는 언듯 잘 이해가 되지않으나, 사실 현재의 운현궁(약 2,500평)은 일부만 남은 것으로 한창 건사했을 시기의 규모는 지금의 4배 정도였다고 한다.  문헌에 따르면 담장의 길이만 수 리에달하고 운현궁에 진입하기 위해 4개의 큰 대문이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현재의 운현궁은 수리를 거처 1997년부터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운현궁 안내도

 

노안당(老安堂)

노안당(老安堂)은 흥선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고종 즉위 후 흥선대원군이 주요 나라정책(서원철폐, 복식개혁, 인사정책 등)을 논의했던 정치의 산실이었다. 건축적으로 정면6칸 측면3칸으로 처마 끝에 각목을 덧대어 차양을 설치한 점이 눈길을 끈다. 대체적으로 전형적인 조선후기 양반가 가옥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노안당(老安堂)이라는 뜻은 노인을 편하게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에 좋은 노년을 보낸다는 뜻을 담았다. 현판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적자해서 만든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조선후기 화려한 정치의 무대였던 이 곳에서 임종하였다.

운현궁 노안당
운현궁 노안당

노락당(老樂堂)

노락당(老樂堂)은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고종 즉위 1년(1864년) 건립되었다. 고종 3년(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준비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가족들의 잔치나 중요한 행사 때 사용되었으며,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노락당
운현궁 노락당
노락당 북행각

이로당(二老堂)

이로당(二老堂)은 대원군의 부인인 민씨가 사용하던 안채이다. 원래 안채 역할을 하던 노락당(老樂堂) 대신하여 고종 6년(1869) 정면 8칸, 측면 7칸 규모로 건립되었다. 남자들이 드나들 수 없는 여성의 공간으로 ㅁ자 구조의 폐쇄성을 지녔으며,  바깥으로 바로 드나들 수 있는 출입문이 내지 않았다.

운현궁 이로당
운현궁 이로당
이로당에서 바라보는 외부

북촌, 서촌, 안국동, 익선동.. 

요즘 소위 말하는 핫한 동네로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이곳에서 만남을 갖는다. 무심결에 운현궁 거리를 지나칠때면, 슬적  이 곳의 역사에 대한 화두를 던지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생생한 우리의 역사가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랜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무관심하다. 이번주, 일상 속 잊혀있던 곳 운현궁에 발걸음을 향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저 예쁜 우리의 한옥을 만나 함께 사진 한장 찍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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